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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철학, 인격적 지식과 거대한 변환
<돈의 철학>은 게오르그 짐멜(1858~1918)을 이해하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꼭 필요한 책이다. 게오르그 짐멜은 유태인으로 독일의 사회학자였다. 당시 칼 맑스나 막스 베버(1864~1920)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했던 학자인데, 한국에는 상대적으로 덜 소개되고 있다. 짐멜은 맑스와 베버와는 다른 도전과 새로운 사고의 지평을 열어준다. <돈의 철학>은 본격적으로 돈의 철학 을 논하는 책이다. 짐멜이 보기엔 맑스의 경제적인 접근이나 베버의 사회학적인 접근은 화폐의 본질에 다가서지 못한다고 보았다. 게오르그 짐멜은 <돈의 철학>에서 화폐가 가진 근대성(modernity)를 살펴보고 있다. Modenity, 근대정신이란 개성을 지닌 인간과 사물들을 보편척도로 환원하고, 감정을 배제한 논리적 전개, 주관성을 삭제한 객관적 평가에 기초한다. 화폐는 근대성을 가장 잘 대표한다. 화폐는 모든 것을 교환가치로 환원하고 모든 것을 화폐의 단위로 표시한다. 근대세계에서는 화폐로 표현되지 않는 것은 무가치한 것이다. 당연히 화폐단위로 환원되지 않는 사랑, 공동체, 연대, 사회의 가치는 무시된다. 철저히 질이 아닌 양의 척도가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맘몬 신의 세계이다. 화폐의 가치는 점차 교환가치로의 기능이 극대화되는 특징을 지닌다. 많은 불량채권을 만들고 경제를 파탄으로 몰고가는 금융파생상품은 화폐가 가진 교환가치의 순수한 결정체이다. 화폐의 교환가치만이 부각되면 각종 역기능이 발생한다. 좀 더 엄밀한 개념을 사용한다면 교환"가치"는 "가치"의 여러 형태 중 하나일 뿐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현대인은 화폐로 환원되지 않는 가치를 상상할 수 없으나 근대 이전에는 모든 것을 화폐로 환원하는 것이 더 이상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가치를 나타내는 하나의 방법이었던 화폐가 모든 가치의 본질이 되었다. 이 지점에서 물신화가 일어난다. 모든 관계에 화폐(가치)가 존재한다. 인간이 있는 곳이면 언제나 물신, 맘몬신인 화폐가 있다. 심지어 인간의 모든 사회적 관계가 돈으로 사고파는 화폐거래로 대치된다. 가장 힘이 쎈 것은 화폐가 된 것이다. 그러나 화폐는 가치의 전부일 수 없다. 화폐는 가치의 본질도 아니다. 가치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생명, 사랑, 나눔이고, 하나님의 주권자적 선물의 공동체 형상을 지닌 인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다. ‘무엇이 가치인가’는 사회 공동체가 결정하는 것이다.“인격적 지식”은 원래 마이클 폴라니의 책 제목이다. 마이클 폴라니는 근대 과학인식체계가 마땅찮았다. 물리학자로 연구하면서 과학지식의 전수 과정을 보니 근대적인 "나-대상(사물)" 객관적 관계가 아닌 일종의 도제식의 수련과정을 통해 "나-너"의 인격적인 참여를 통해 지식이 생성된다는 현실을 직면했다. 그렇다고 인격적인 지식이 주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일정한 수련과정의 규칙들이 있고 이것이 암묵지로 지식의 베이스로 작용한다. 여기서 인격적 지식이야기를 꺼낸 것은 마이클 폴라니가 포스트모던적인 인식론에 미친 영향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사실상 마이클 폴라니의 "인격적 지식"의 주석서인 “Proper Confidence”에서 레슬리 뉴비긴은 “인격적인 참여”를 “제자도의 측면”에서 고찰하고 있다. 지식 혹은 진리의 문제에서 인격적인 참여, 곧 “앙가주망”(engagement)은 무척 중요한 문제이다. 지식 혹은 가치는 주체의 참여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생명-주권자 정치의 또 다른 토대가 여기에 있다.마이클 폴라니의 형 칼 폴라니는 <거대한 변환>에서 무지개 경제를 이야기한다. 폴라니는 국가계획경제, 자유시장, 케인즈안적인 접근 모두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폴라니는 국가의 개입, 자유주의 시장과 자율적인 조합주의가 무지개처럼 혼합된 사회경제형태를 이상적인 방향으로 삼았다. “인간이 제조하지 않은 것은 상품이 아니다. 요컨대, 땅, 화폐, 노동, 이 세 가지는 상품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이 세 가지를 허구의 상품으로 만드는 경제제도이다.”(칼 폴라니) 여기에 칼 폴라니의 기획이 지닌 중요한 의미가 있다. 자유주의 시장 경제가 가진 가장 큰 약점으로 모든 것을 상품화한다는 것이다. 폴라니는 인간에게는 상품화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보았다. 인간의 노동, 공공재인 자연(토지), 경제의 기본적인 토대인 화폐가 그것이다. 노동하는 인간은 사회적 평균노동이라는 추상으로 환원될 수 없는 사회적인 가치를 지닌 존재이다. 공공재는 함께 누려야할 공동체의 자산이지 일부가 소유해서 독점할 수 없다. 화폐는 기축통화로 경제의 안정성을 최우선의 목표로 해야지 금융파생상품으로 만들어 신자유주의체제 아래 엄청난 규모의 부실채권을 만들어 내는 구조로 가서는 안 된다. 폴라니는 시장경제의 대안으로 인간의 얼굴을 한 지역공동체적으로 분절된 경제형태를 제시한다. 칼 맑스의 "자본론"의 중심 문제는 "(노동)가치론"이다. 자본주의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자본의 이윤율 저하 경향은 수많은 이가 도전했으나 이는 한국 경제 상황에서 실증적으로 입증되지 못했다. 이 이론들은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중요한 함정에 빠져 있다. 인간의 노동은 추상화될 수 없다는 간단한 사실, 가치의 문제는 소위 실증과학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반면에 시장지상주의자들은 소득의 분배가 생산에 대한 기여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건 증명이 불가능한 명제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다. 이 믿음을 강화하고 방어하기 위해 국가권력과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가 동원된다. 모든 가치가 노동으로부터 나온다는 명제처럼 증명불가능한 시장지상주의자들의 신앙도 허망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가치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가치의 사회적 가치생산과 분배과정인 정치과정을 통해 정치경제생태계를 순환하면서 최종적으로 창출된다. 맑스의 자본론은 "정치"경제학 비판이다. 단순한 "경제학" 비판이 아니다. 가치의 문제는 단순히 사회적 평균노동으로 계산되는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근원인 인간이 가치 문제에 개입하고 그 인간의 개입이 곧 가치를 만들어내는 정치경제적 합의의 틀을 순환적으로 형성해 간다. 이 지점이 오히려 "정치"경제학 비판서인 자본론을 통해 자본을 해체하려 했던 맑스의 원래 기획과 연결된다.처음으로 돌아가서 마이클 폴라니는 지식의 습득과 형성에 인간 주체가 개입된 참여-지식의 문제를 다룬다. 칼 폴라니는 경제의 실증 과학으로 환원되지 않는 가치의 문제를 지적한다. 둘은 공통적으로 인간과 가치(진리 혹은 지식)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 구조가 가치 분배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가치란 언제나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에서 출발하고 인간에서 끝난다. 그리고 무엇을 얼마만큼 가치 있는 것으로 결정하는 것은 절대적인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권력도, 보이지 않는 자유주의 시장도, 국가의 개입도, 통화론자의 화폐적 개입도 아닌 주권자인 왕의 공동체적 형상으로 우리 사회의 구조를 결정할 사회적, 예언자적 상상력을 발휘해야할 하나님의 교회 자신이다. 우리 교회는 이 생명-주권자로서의 권능을 제대로 일상에서 행사하지 못한 채 이제까지는 국가나 시장, 신자유주의 체제에게 이 권능을 넘겨준 채 감옥 같은 수용소군도의 “살아 있으나 죽은 자, Homo sacer"(아감벤)로 살고 있었다. 시장경제는 (상징)교환가치를 통해 삶의 시장의존성을 증가시킨다. 이 시장의존성을 완화하는 조합공동체, 자족적인 지역공동체들의 연대가 가치의 분배 구조를 변화시킬 것이다. 국가에 의존하지 않는 자율적인 지역생산공동체 경제시스템이 "윤리적 소비"를 넘어설 수 있는 지점이다. 선물의 경제의 관점에서 통일에 대해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 무리한 남북한 국가의 통합보다는 지역자치구의 강한 연대에 동아시아 자치구들의 약한 연대의 결합 형태로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를 만들어 가면 어떨까 싶다. 삶의 방식을 자율적인 연대로 분절화해 구성하면 (국제)경제 시장상황에 덜 휘둘리게 된다. 분절된 다양한 지역공동체는 가치의 다양한 변종을 증가시킬 것이다. 또 다른 선물의 경제의 예는 지식과 연대에서 SNS의 역할이다. 주목해야할 점 중 하나는 소셜 네트웍은 정보를 병렬배치를 통해 분산처리하는 하나의 슈퍼컴처럼 작용한다는 점이다. 사회적 흐름 속에 있는 인간은 하나의 연산자로 정보에 대한 평가라는 사회적 연산을 자발적으로 수행하는 집단지성의 생태계로 연결되어 있다. 다만 이 연결이 정보에 대한 조우성과 의미성을 획득하기 위해서 사회적 상상력이 주권자들로 스스로를 자각하고 자발적으로 조직화된 연대로 나타나야 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서 사회적 관계망으로서의 교회의 역할이 우리 사회에 막중하다. 그리고, 비록 일부 영향력 있는 명사들의 의제설정에 휘둘리도 하지만 이런 집단지성의 SNS 생태계가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가치의 생산, 분배, 소비 구조를 개선하는데 좋은 도구로 쓰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지금까지 다루었던 진정한 의미의 <돈의 철학>,<돈의 신학>인 "선물의 경제"가 필요하다. 한국교회가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다시 고민하고, 희년공동체의 가치의 본질을 다룰 자립적인 생산기반을 갖는 자치적인 신앙공동체의 비폭력 주권자 직접 행동이 필요한 시대이다.
짐멜의 돈ㆍ화폐경제에 대한 연구는 당시에 유행하던 자본주의 비판에 맞서 자본주의란 이제 단순히 거역하거나 그 흐름을 되돌릴 수 없는 역사적ㆍ사회적 세력과 질서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그 토대 위에 근거하는 또는 그 토대가 되는 화폐경제는 단순히 낭만주의적 사유나 역사철학적 사유로 극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자본주의는 당시의 비판처럼 문화의 파괴나 타락의 원인이 아니다. 자본주의 자체도 문화인 것이다. 바로 물질문화이다. 자본주의라는 물질문화는 새로운 정신문화의 물질적ㆍ경제적 토대가 된다. 돈과 영혼의 결합 가능성에 그가 주목하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물질문화와 정신문화의 ‘상호작용’이다. 그에 따르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화폐경제는 건전한 정신문화가 발전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다.
일반적으로 짐멜의 화폐 이론, 특히 이 책은 화폐경제 비판 또는 자본주의 비판, 아니 더 나아가 문화 비판 또는 시대 비판으로 해석된다. 짐멜은 정신적인 것 말고도 물질적인 것을 문화에 포함하고 이 둘의 관계와 상호작용을 논구함으로써, 문화의 외연과 문화철학의 인식의 범위를 확장하려고 하는 것이다. 또한 짐멜은 그 자체로 아무런 특성도 없는 획일적이고 비천한 매체로서 모든 것을 무차별화하고 평준화하는 ‘돈’이 인간의 영혼을 구제하고 개인의 인격을 발전시키며 자유를 함양할 수 있는 조건을 따져 묻는다. 결론적으로 그의 화폐 이론은 단순히 문화 비판이나 시대 비판에 머물지 않고 돈에 기반하는 문화의 가능성을 찾는 지적 작업이라는 데에서 그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서문
제1부 분석 편
제1장 가치와 돈
제2장 돈의 실체 가치
제3장 목적 계열에서의 돈
제2부 종합 편
제4장 개인의 자유
제5장 인격적 가치의 화폐 등가물
제6장 생활양식
인용 및 참고 문헌
〈해제〉 돈과 영혼: 인간 삶과 문화의 심층에 철학적 측연을 던지다
옮긴이의 말
게오르그 짐멜 연보
게오르그 짐멜 전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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