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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만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차도 사람을 취하게 한다. 고수는 안다. 다취(茶醉)가 주취(酒醉)보다 무섭다는 것을. 그러나 한국인 가운데 술에 취해본 이들은 모래알처럼 많아도 차에 취해 본 이들은 분명 극소수일 터. 나는 하루라도 차를 마시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히는 차 애호가로 다취가 주취보다 무섭다는 것을 일찍이 체감한 바 있다. 보이차와 녹차를 가장 즐기는데 한 두 잔이면 괜찮지만 서너 잔 이상 넘어간다면 빈 속에 보이차와 녹차는 금물이다. 반드시 다식을 곁들여가며 마실 것을 당부한다.지금은 가볍게 옥수수 수염차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모름지기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면 관련되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사물이면 수집하게 되고, 문헌이면 살펴보게 되기 마련이다.무엇보다도 기호와 취미가 같은 이들끼리는 유유상종하게 된다. 나는 차를 좋아하고 하루라도 거른 적이 없다시피 하지만, 다기를 미친듯이 수집하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저 녹차와 보이차를 구분지어 사용할 두 개의 다호뿐이었다. 몇 년간 사는 집 근처 찻집에서 주인장과 수다를 떨어가며 한 두시간 차를 마시는 버릇이 있었다. 주인장이 차밭에서 샘플로 가져온 햇차나 값비싼 시합차를 여러 다식과 곁들여 음미하곤 했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오고 보니 주변에 차를 즐기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한국인은 확실히 중국인과 일본인보다는 차를 적게 마시는 종족이다.물론 커피는 예외. 우리 조상들도 차를 일상에서 즐기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조선 시대도 차는 기호음료가 아니라 배탈이나 체증을 다스리는 데 쓰이는 약용으로 가끔 활용되었다 한다. 비록 18세기 조선 후기에 들어와 다산, 초의, 추사에 의해 차문화가 새로이 부흥했지만 역시 오늘날과 같은 기호식품은 아니었다. 오늘날에 이르러 많은 이들이 간편한 티백차를 마시고 있지만 불가의 사찰에서는 전통적인 다문화가 여전히 주맥을 이어오고 있다. 차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스스로 겸손해하는 정민 교수가 조선 후기 차문화에 대한 야심찬 연구서인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김영사, 2011)를 선보였다. 다산, 초의, 추사를 중심으로18세기 조선 후기의 내로라하는 다벽(茶癖) 의 소유자들의 차 문화 문헌들과 <육로산거영>과 자하 신위의 <남차시 병서>와 같은 다양한 차시(茶詩)들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차 문화사에 있어서 성지 라 할 수 있는다산초당과 일지암에 대해서도자세히 언급한다. 머릿글은저자가 <동다기(東茶記)>를 우연히 발견하게 된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진도에 귀향 온 죄인 이덕리의 <동다기>는 초의의 <동다송(東茶頌)>에 인용되어 전해질 뿐 실전된 것으로 간주되던 문헌이다. <동다기>는 다산의 저작으로 잘못 알려져 왔는데 저자는 이를 처음으로 바로잡았다. 부안현감 필선 이운해가 지은<부풍향차보(扶風鄉茶譜)>도 처음 소개되는데 이는 1775년에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다서다. 부풍 은 전북 부안의 옛 지명이다. 고창 선운사(禪雲寺) 인근의 차로 만든 7가지 향차의 제법을 기록한 글로, 원본은 전하지 않고 황윤석(1729-1791)의 일기 《이재난고》에 그림과 더불어 전해진다.차 애호가로써 내가 차를 반기고 즐기는 심경은 아마도 다벽이 심한 박영보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박영보가 <남차병서>에서 피력한 다벽과 차 예찬은 차 애호가의 마음을그대로 대변한다. "내 삶은 다벽(茶癖)에다 수액(水厄)을 더했는데나이들어 뼛속까지 삼시충(三尸蟲)이 박혔다네.열에 셋은 밥을 먹고 일곱은 차 마시니집에 담근 강초(薑椒)마냥 비쩍 말라 가련하다.이제껏 석 달이나 빈 찻잔 들고 있다송우성(松雨聲) 누워 듣자 군침이 흐르는구나.오늘 아침 한 탕관(湯灌)에 장과 위를 씻어내니방 가득 부슬부슬 초록 안개 서리누나."(267-8쪽)
역사상 가장 풍요로웠던 18, 19세기 조선의 학문ㆍ예술ㆍ문화 교류사를 종횡한 역작! 우리나라 최초의 다서 부풍향차보 와 이덕리의 동다기 외에 수많은 차 관련 자료와 사료들을 끈질긴 집념으로 발굴, 학계에 최초로 소개하여 우리 차 문화사를 다시 쓴 정민 교수. 정치(精緻)한 문헌 해석과 면밀한 검토, 정확한 의미 부여로 우리 차 문화를 집대성했다.

발굴 자료를 원본 그대로 공개하여 후속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물꼬를 터놓는 한편, 한국과 중국의 각종 차 그림 명작 등 300여 컷의 자료를 실어 책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또한 그동안 답습 누적되어온 차에 관한 오류를 바로잡았으며, 차계와 학계에 논란이 되고 있는 쟁점과 의문을 통쾌한 논거를 들어 마무리 지었다.

우리 차의 중흥조 다산 정약용, 차의 시대를 활짝 연 초의 스님, 차에 대한 애호를 예술로 담아 보급시킨 추사 김정희! 「다법수칙」의 김명희, 「남차병서」시를 지은 박영보, 혜장, 신위, 신헌, 황상, 홍현주, 정학연, 정학유, 이상적 등 시서화 대가들이 펼치는 수려한 시와 정감 어린 편지 글에서부터 떡차론, 차 효용론, 제다법, 차 무역론에 이르기까지! 차향처럼 은은하고 정교하게 빚어낸 조선 후기 차 문화의 모든 것을 담았다.


머리말
서설 은성했던 차 문화의 기억을 찾아서

제1부. 잊혀진 차 문화의 기억을 깨우다

1. 일곱 가지 향차 이야기 : 최초의 다서 부풍향차보
저자 이운해에 대하여ㅣ 부풍향차보 는 어떤 책인가?ㅣ 부풍향차보 와 향약차

2. 마침내 찾은 우리 차 문화 고전 : 이덕리와 동다기
「기다」인가 동다기 인가?ㅣ이덕리는 누구인가?ㅣ 동다기 는 어떤 책인가?

3. 18세기 차 문화의 실상은 어땠나? : 동다기 의 차 이해
18세기 조선의 차 문화 실상ㅣ 차의 산지와 채다ㅣ차의 별칭

4. 떡차 마시는 법과 우리 차의 우수성: 동다기 의 떡차론과 차 효용론
떡차와 엽차ㅣ떡차 마시는 법ㅣ우리 차의 우수성과 차의 효능

5. 차 무역의 구상과 운용 계획 : 동다기 의 차 무역론
동다기 의 저술 목적ㅣ차 채취 방법과 예상 수익ㅣ차시 운영 방법과 수익금 활용 방안

제2부. 우리 차의 중흥조 다산

6. 역대 중국의 차 전매제도 : 다산의 「각다고」론
전대의 각다 논의ㅣ「각다고」의 내용ㅣ역대 각다 정책에 대한 다산의 태도

7. 아홉 번 찌는 구증구포의 제다법 : 다산의 떡차론과 구증구포설
다산이 마신 차는 떡차ㅣ다산의 떡차에 대한 다른 증언들ㅣ구증구포의 실체ㅣ구증구포 떡차인 보림사 죽로차ㅣ일제강점기로 이어진 떡차 제법

8. 스님! 차 좀 보내주소 : 다산의 걸명 시문
다산의 초기 차 생활ㅣ다산과 혜장의 만남과 걸명시ㅣ다산의 「걸명소」

9. 우리 차 문화 중흥의 산실 : 다산초당과 다산의 차 생활
다산초당의 다조와 약천ㅣ새로 찾은 다산의 차시와 차 편지ㅣ다산의 소실 정씨 모녀와 자족적 차 생활

10. 주머니에 담아둔 찻잎 : 아암 혜장의 차시
다산과 혜장의 교유시ㅣ혜장의 걸명 답시ㅣ혜장의 차시

11. 차 맷돌을 빙글빙글 돌려 : 육로산거영 에 보이는 차시
육로산거영 의 구성과 차시ㅣ 육로산거영 에 수록된 석옥 화상의 차시ㅣ다산의 차시ㅣ수룡 색성과 침교 법훈의 차시ㅣ철선 혜즙의 차시

12. 적막히 스님 하나 찾아오누나 : 다산과 초의
다산과 초의의 첫 만남ㅣ다산초당에서의 강학ㅣ다산의 가르침과 내면 갈등

제3부. 차의 시대를 활짝 연 초의

13. 풀옷 스님의 이름 내력 : 초의 명호고
출가와 법명 의순ㅣ초의란 이름의 연원ㅣ중부란 자의 의미

14. 나뭇가지 하나로도 편안하다네 : 일지암 이야기
일지에 담긴 뜻ㅣ일지암 건립 경과ㅣ일지암의 공간 배치

15. 남녘 차의 짙은 향기 : 박영보의 「남차병서」와 「몽하편」
초의와의 첫 대면과 「남차병서」ㅣ초의의 「증교」시 화답과 박영보의 답시ㅣ「몽하편」에 얽힌 이야기

16. 차 끓여 박사 이름 얻으셨구려 : 초의와 신위
신위의 「원몽」 4수ㅣ자하의 「남차시 병서」ㅣ삼여탑과 초의차ㅣ초의의 단차와 신위의 음다법

17. 차의 역사를 말씀드립니다 : 동다송 다시 읽기
동다송 의 창작 동기ㅣ 동다송 새 풀이ㅣ 동다송 의 내용 구성과 의미

18. 찻일은 차와 물의 조화 : 다신전 의 의미
다신전 은 왜 베꼈나?ㅣ 다신전 과 초의의 제다법ㅣ다신의 정체

19. 찌든 속을 씻겨주오 : 초의와 황상
추사와 황상ㅣ초의와 황상의 만남ㅣ교유와 걸명시

20. 소나무 아래서 수벽탕을 달입니다 : 초의와 홍현주
초의와의 첫 만남ㅣ초의가 해거에게 보낸 편지와 동다송 ㅣ초의의 금강산 여행과 수증시

21. 눈을 녹여 차를 끓였네 : 해거 홍현주의 차시와 차 생활
눈물로 끓인 보이차ㅣ해거의 걸차시와 명집ㅣ해거의 차시와 차 생활

제4부. 차 문화를 앞장서 이끈 추사

22. 차의 삼매경을 깨달았구려 : 추사와 초의
추사의 차 입문과 차 생활ㅣ초의와 추사의 첫 대면ㅣ걸명 편지와 초의차의 종류

23. 차로 인해 물맛을 알고 : 추사의 차 생활과 그 밖의 걸명 편지
초의에게 준 시문과 글씨ㅣ쌍계사 승려들에게 보낸 차 시문ㅣ역관 제자들과의 차 인연

24. 차 바구니를 온통 뒤져서라도 : 추사와 다선 향훈
추사의 편지와 향훈의 차ㅣ향훈에게 준 추사의 게송ㅣ향훈에게 보낸 편지와 다선의 호칭

25. 차를 반쯤 마시고 향을 사르다 : 다반향초론
다반향초는 무슨 뜻인가?ㅣ신위와 북선원의 다반향초실ㅣ다반향초를 노래한 한시들

26. 신필의 장한 기운 : 추사 「명선」 진안변
「명선」 위작설의 경과와 논거ㅣ「명선」에 얽힌 초의와 추사의 인연ㅣ「명선」의 필획, 과연 추사의 것이 아닌가?

제5부. 그 밖의 후원자들

27. 차 만드는 법을 논함 : 산천 김명희의 「다법수칙」
새 자료 「다법수칙」에 대하여ㅣ「다법수칙」의 채다법ㅣ「다법수칙」의 초다법

28. 어찌 이리 웅장한가? : 산천 김명희의 「사차」시와 초의의 제2다송
산천과 초의의 인연ㅣ산천의 「사차」시ㅣ제2의 다송, 초의의 답시

29. 반드시 스님이 만든 차라야 합니다 : 정학연의 차 편지와 호의의 장춘차
정학연의 차시와 차 관련 기록ㅣ호의의 장춘차ㅣ정학연의 차 청하는 편지

30. 포장을 열자마자 맑은 향기가 : 정학유의 차 편지와 두륜진차
정학유의 차시와 초의의 화답시ㅣ호의의 두륜진차ㅣ수제진품차의 효능

31. 차의 원류를 묻는다 : 이규경의 「도차변증설」고
도(?)와 차(茶)의 관계ㅣ차의 용례와 다품, 우리 차에 대한 논의ㅣ차씨를 뿌리고 심는 방법ㅣ대용 차에 관한 논의

32. 그 운치 참으로 얻기 어렵네 : 신헌과 초의
신헌과 초의의 교유ㅣ신헌과 초의의 시문 수창ㅣ신헌의 차시

33. 다품 중의 으뜸 : 신헌구의 「차설」과 초의차
신헌구와 대둔사 승려의 교유ㅣ신헌구의 「차설」ㅣ신헌구의 차시

34. 돌샘물로 반죽해서 진흙처럼 이겨서 : 백운동 별서와 월산작설차
백운동 별서의 공간 구성과 내력ㅣ다산의 백운첩 과 초의의 「백운동도」ㅣ백운동과 월산작설차

35. 돌솥의 푸른 차 연기 : 우선 이상적의 차시와 차 생활
일상 속의 차시ㅣ차를 통한 삶의 성찰ㅣ우리 차와 외국 차에 대한 기록

36. 작은 용이 꿈틀꿈틀 서려 : 가야사 탑에서 나온 700년 된 용단승설차
이상적의 「기용단승설」ㅣ황현의 매천야록 에 보이는 기록ㅣ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ㅣ가야사의 옛 모습

37. 내 다옥 나 홀로 좋아할밖에 : 이유원의 다옥과 차시
다옥을 짓고 차를 즐긴 차인ㅣ우리 차에 대한 애정과 감식안ㅣ중국차와 일본 차에 관한 기록

38. 참기 어려운 차 생각 : 범해 각안의 「차약설」과 「차가」
「차약설」의 차 효용론ㅣ「차가」의 차론ㅣ초의차에 대한 증언과 그 밖의 차시

에필로그 조선 후기 차 문화사의 전망과 과제
부록 조선 후기 차 문화 활동 연보
미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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