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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기억

ansla 2024. 1. 21. 16:27


- 제목 : 내일의 기억- 지은이 :오기와라 히로시- 옮긴이 : 신유희- 출판사 : 예담-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는 나중에는 가족의 얼굴마저 기억하지 못하는 치매가 점점 진행되는 중년남자의 이야기 이다.약속을, 길을, 내가 왜 여기 있는지를 점점 모르게 되어가는 사이에도 주인공은 기억을 놓지 않기 위해서 처절하게 메모를 하고 메모를 휴대하고 다닌다.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한 주인공의 노력에도 불구하고주인공의 기억은 점점 소멸된다. 주인공이 기억을 완전히 잃고나서 집으로 오는 도중에 처음보는 여자를 만났다. 나중에 여자에게 이름을 물으니 부인의 이름이 나왔으나 주인공은 전혀 모르고 길을 간다.이 장면이 좀 물클했던것 같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당신에게 묻고 싶다
삶의 고뇌, 슬픔, 그리고 행복을 당신에게 전하고 싶다

누구더라, 왜 있잖아, 그 사람.
요즘 들어 이런 소리를 자주 한다.

이야기는 한 광고 대행사의 경합 프레젠테이션을 대비한 기획회의 자리에서 시작된다. 영업부 부장인 사에키는 올해 나이 쉰으로, 스스로만 아직도 제일선에서 팔팔하게 일할 나이라고 여긴다. 다른 사원들, 실제로 아직 팔팔하게 일할 나이의 젊은 사원들은 사에키 부장이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를 마치 구석기인이 던지는 시대에 뒤떨어진 발언쯤으로 생각한다. 아니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고루하다고 대놓고 표현하는 광고 대행사만의 프리한 회의 스타일이 느껴지는 장면 전개. 분명 이 소설은 독자를 울리는 최루성 스토리를 표방하지만, 작품 곳곳에는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 없을 만큼의 생생한 위트와 세련된 유머 또한 살아 있다. 이러한 점이 작가 오기와라 히로시만의 매력이 아닐까.
주인공 사에키 부장에게는 25년을 함께한 부인 에미코와 몇 달 후 결혼식을 치를 예정인 딸 리에, 예비사위 와타나베, 그리고 리에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미래의 손주까지 총 5명으로 이루어진 가족이 있다. 특별한 구성원은 아니지만, 사랑스러운 이들과 평온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에게 있어 특별한 구성원은 오히려 몇 년째 동고동락하고 있는 개성 강한 회사 동료들과 노골적으로 카바레 접대를 바라는 능글맞은 거래처 과장 가와무라가 그 역할을 차지한다.
오랜만에 경합 프레젠테이션에서의 승리도 맛보고 나름 영업맨으로서 뿌듯한 일상을 보내던 사에키에게 어느 날부터인가 나타난 불면증, 건망증 같은 불길한 증상들. 처음에는 그저 과로의 탓이겠거니 하고 넘겨보지만, 이제 그도 건강을 자신할 수만은 없는 나이다. 큰맘 먹고 대학병원을 방문한 그에게 자신보다 열 살은 어려보이는 담당의사는 초등학생에게나 해당할 듯한 IQ 테스트를 하는데…. 며칠 후의 검사 결과는 약년성 알츠하이머.

아무렴, 대단한 그릇은 아니지만 나는 쉽게 깨지지 않아.
이대로 깨질 수는 없지!

그때부터 그의 인생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기억에 내려진 사형선고. 현재로서는 치료법이 없는 불치의 병으로 환자에 따라 그 진행 속도에 차이가 있지만, 빠르면 4,5년 내에 목숨까지 위태로울 수 있는 병. 더구나 사에키의 아버지 또한 알츠하이머를 앓다가 세상을 떠나지 않았는가. 그 과정의 처참함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기억이 있기에, 사에키는 더욱 좌절한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할 수도 없다. 기억은 기약 없이 그의 몸을 찾아온다 해도, 내일은 어김없이 돌아오고, 우리의 인생은 계속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우선 출근시간을 앞당긴다. 누구보다도 일찍 사무실에 도착하여, 하루 동안 진행할 업무 상황 체크와 미팅 약속, 거래처 관리 등의 중요한 사항들을 메모지에 기록한다. 그러나 날로 발전하는 속기록 실력과 주머니를 가득 채우는 메모지만으로 알츠하이머의 진행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주요 거래처인 기가포스와의 미팅이 있던 오전, 그는 결국 시부야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되는데…. 매일 만나던 동료의 얼굴과 이름을 잊고 매일 다니던 출근길과 거래처를 잊게 되었을 때의 허탈함은 한마디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러한 느낌을 오기와라 히로시는 이 ‘시부야 미아 장면’을 통해, 보는 이로부터 긴장감으로 손에 땀이 배고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로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길을 잃은 것은 사에키만이 아니다. 우리도 인생길에서 언젠가는 같은 모습으로 헤매게 되는 때가 있지 않을까.

싸구려 드라마 같은 말 하지 말아요.
난 절대 최종회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사에키의 기억은 지루한 홈비디오처럼 리와인드되어 가고 그와는 반대로 다른 이들의 인생은 새로운 기억과 추억을 쌓아가고 있다. 딸의 아름다운 결혼식 장면, 너무도 예쁜 손녀의 탄생, 직장동료들과의 작별 인사 등 그도 마지막 추억을 잊지 않기 위해 힘겹게 노력하는 나날의 연속이다. 결국 그의 병명을 알게 된 가족과 직장동료들이 차분히 수용하는 과정이 진행되고, 그들과 마찬가지로 사에키도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서서히 삶과 작별하는 연습을 시작한다. 아니 오히려 미래의 삶을 준비하는 예행연습일까. 아내에게 부담스런 짐이 되고 싶지 않아, 개호시설을 둘러보며 마음의 준비를 하는 사에키. 약년성 알츠하이머로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오히려 알츠하이머인 채로 계속 살아가는 것. 그런 생각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모진 생각도 하지만, 그의 몸이 마음에게 말한다. 살아라, 라고.
젊은 시절의 우정과 사랑의 추억이 깃든 가마터에서 잊을 수 없는 하룻밤을 보내고 산길을 내려오던 사에키는, 결국 지금까지 힘겹게 잡아온 기억의 끈을 놓치고 만다. 어제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아내를 맞이하게 되는 라스트신은 영원히 잊지 못할 아름다운 장면으로 모든 이의 가슴에 남을 것이다.